10월 초, 그림쟁이들을 놀라게 할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이 낳은 거장이자, 라이브 드로잉 쇼라는 장르를 일반인에게 알린 천재 작가.
김정기씨가 40대라는 젊은 나이에 운명을 달리한 것.
불과 몇달 전에 나혼자만 레벨업이라는 세계적인 대히트 만화의 작가였던
장성락씨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충격이 가시자 마자
또 한명의 인재이자 능력있는 그림작가가 하늘로 떠난 것이다.
사실 난 김정기씨가 애니창아라는 입시미술학원의 원장을 하던 시절부터 알고 있었으니
꽤 일찍 알게 된 셈이다. 그 당시에는 그림쟁이들 중에도 그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김정기님의 그림을 보여주면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거기에다가 그게 러프뎃셍도 없고, 투시선도 잡지 않고, 어느 보조선도 쓰지 않은채
붓이나 펜으로 그냥 한번에 그려낸것이라는 것까지 이야기하면 더더욱 넋을 잃곤 했다.
김정기라는 작가는 작화가로서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경지에 다다른 사람이었다.
보통 그림을 그릴때는 무조건 큰 덩어리부터 먼저 그린 다음, 안쪽의 세밀한 부분을 표현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김정기씨는 그런거 없이, 그냥 한 지점부터 차례대로 정밀하게 묘사해나가면서 그림을 연결시켰다.
마치 프린터기에서 완성된 작품 뽑아내듯이.... 3D프린터로 모형 쌓아가듯이 말이다.
그것도 러프뎃셍이나 , 보조건이나 투시선도 쓰지 않으면서
어느 각도에서건 자유자재료, 거기에다가 비율과 형태와 투시까지 다 완벽하게 맞춰서 그려버리니 말이다.
세계에서도 보기 힘들 이런 괴수가 유명해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든 일.
유튜브와 같은 인터넷 매체의 활성화와 함께, 그는 세계를 열광시키는 유명 작화가가 되었고
나중엔 마블이나 블리자드 같이 그림쟁이들이 가득한 회사에서도 직원들 모두가
김정기씨를 섭외해서 그의 드로잉 쇼를 관람했다.
전 세계의 그림쟁이들에게 그는 우리의 상상보다 더더욱 유명한 사람이었나보다.
그가 운명한 사실이 알려지자, 인스타그램에는 외국 여러 작가들이 끊임없이 그의 초상화와 캐리커처를
그려올리며 추모의 물결을 이어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들은 그 분에 대한 강렬한 일화가 있다면
김정기씨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고, 그의 낙서장 (을 위시한 작품 모음집)이 출간되었는데,
초판 몇 부는 한정판으로 표지가 백지상태였다고 한다.
그 상태로 발매기념 사인회에 가져가면, 정기님이 즉석으로 표지를 각각 다 다르게 그려주셨다고 하니
정말로 놀라운 이야기 아니겠는가?
다행인 것이 있다면
자신의 재능을 너무 아껴서 작품을 얼마 남기지 않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낙서와 그림을 그냥 생활화 했으며
새 연습장을 사도 이틀만에 낙서로 다 채워버린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으니.....
그리고 김정기씨를 보면 자동적으로 생각나는 앞선 인물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만화가인 로버트 크럼이다.
대학시절 교수님이 로버트 크럼의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틀어준 적이 있다.
그는 정말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려대는 사람이었다.
흔히 어느 일을 잘 하거나, 그 일을 좋아할 때
밥먹고 그것만 했냐는 과장된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크럼의 경우는 그게 과장이 아니었다.
그는 심지어 밥을 먹는 순간에마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며
열차를 타면 열차표에 낙서를 하고 있었고,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해당 비디오 길이가 2시간이면 2시간 내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시절 갓 스물을 넘긴 내가 봤을때 그런 모습은 전혀 좋아보이지 않았다.
저렇게 살면 재미 있을까?
세상에 즐거운 일이나, 재미있는 활동이 얼마나 많은데 저렇게 먹고 자는 시간 외엔 그림만 그려댈까?
그러나 지금 보면, 그 정도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완전히 빠져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멋진것인가. 거기에 늘어나는 실력은 기본 보너스일 것이다.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려댄 로버트 크럼 역시, 인터넷에 그 이름만 검색하면
김정기처럼 수많은 작품을 찾아볼 수 있다.
그가 그리는 것을 라이브로 본 적은 없지만
작품에서 느껴지는 내공처럼 그 역시 밑그림 없이 그냥 단숨에 그려버리는
그런 경지에 이르지 않았을까 예상해 본다.
잘하는 자는 좋아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이 격언에 가장 어울리는 이들이 아닌가 싶다.
이들은 재능을 타고 났으면서, 즐기기까지 한 사람들이었을까?
아니면 즐겼기에 , 재능을 뛰어넘는 극한의 영역까지 다다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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