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 쯤은 들어봤을 식사 예절이 있다.

음식 소리내서 먹지 말기, 흘리면서 먹지 말기, 먹으면서 말하지 말기.

뜨거운 거 입으로 불면서 먹지 말기. 응? 다른 건 대충 이해가 가는데 이건 왜 문제라는거지?

뜨거운 거 불면서 먹는게 뭔 상관이라고.....

암튼 좋지 않은 거라니까 안 하긴 했지만, 그게 왜 예의에 어긋나는지 이유는 몰랐었다.

그런데 며칠 전 아는 형님과 내장탕을 먹을때였다.

자꾸 뭔가 기분나쁜 느낌이 들어서 보니, 앞에서 뭔가 불어오고 있었다.
맞은 편의 형님이 뜨거운 국물을 먹기전에 열심히 불어대고, 그게 그대로 날아오고 있었다.
얼마나 세게 분다고 그게 날아오나 싶지만, 입김은 의외로 세다. 살짝 불어도 맞은 편에는 다 날아온다.

뜨거운 음식을 불어대면서 먹는 버릇이 더러운 이유는 이것이다.

맞은 편의 사람에게 자신의 입냄새를 고스란히 날려보내기 때문이다.

구취가 심하면 끔찍한 고문이고, 심하지 않더라도 남이 불어대는 입김이 와 닿는것은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나, 잘 나가는 아름다운 여자 아이돌 연예인이 아닌 이상....)

워낙 오랫동안 보고 지내고 같이 생활하는 사람이며, 나보다 형님이기도 하고

암튼 껄끄러운 분위기 만들기 싫어서 굳이 말하진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두번 밥 같이 먹은 게 아닌데, 이제와서 뭐라 하기도 그렇고

 

하지만 한 숟가락 뜰 때마다 매번 후후 불어대는 꼴이 왜 그리 얄밉던지...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정면을 피해서 가서 먹었는데,

눈치를 챘으려나 채지 못했으려나는 모르겠다.

암튼 순대국이 됐든 설농탕이 됐든 내장탕이 됐든 추어탕이 됐든, 생태탕이 됐든

한국 요리 중에 뚝배기에 나오는 뜨거운 국물 음식은 셀수 없이 많다.

혹시라도 뜨거운 음식 먹으면서 입으로 불어대면서 먹는 버릇이 있는 사람은 이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습관을 가지고 있을 것 같긴 하지만...)

혼자서 먹거나, 같이 벽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서 먹는다면 몰라도

정면에  마주보고 식사하는 사람이 있을때 , 후후 불어대면서 먹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다는 것.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기에 충분한 행위일 수 있다는 걸.....

다 쓴 콜라나 사이다 같은 페트병을 물병으로 재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렇게 페트병을 물병으로 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러면 생수 페트병은 어떨까?

이것은 처음부터 물이 담겨 있던 용기니까 사용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 역시 문제가 있다. 그냥 페트병 자체는 다시 써먹지 않아야 한다.

애초에 일회용으로 만든 제품을 왜 재사용하는가?


페트병을 물통으로 쓰지 말아야 할 이유는 단 하나다.

세척이 어렵기 때문이다. 

애초에 페트병이라는 제품 자체가 유통과정등을 염두에 둬서 입구를 매우 작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좁은 입구로 들어가는 병솔은 거의 없다.

요샌 페트병 전용으로 만들어진 가느다란 병 솔도 있긴 있다. 

그런데 이런 페트병용 병 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페트병을 물병으로 사용하는 건 좋지 않다.

 



이것은 현재 내가 쓰고 있지만, 문제점이 있어서 버리려는 물병이다.

이렇게 물병으로나온 제품들의 공통점은 세척이 편하도록 입구가 넓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제품 역시 세척이 제대로 안된다는 단점이 있다.



내가 얻은 결론은 물병의 필수 조건은 깔끔한 세척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려면 몸통과 입구의 차이가 거의 똑같아야 한다. 

입구가 몸통보다 적으면 위 그림의 좌측처럼 세척할 수 없는 사각이 발생한다.


아무리 작은 사이즈의 전용 청소솔이 있더라도 페트병은 도저히 물병으로 써먹지 못할 이유가 이것이다.


물통의 몸통에는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홈이 파여져 있는데, 몇몇 제품은 청소솔이 닿지 않아서 세척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아무런 굴곡이 없는 옆면이 가장 좋지만, 이런 경우는 들다가 손에서 미끌어지는 경우가 있다.


결론. 쓸만한 물병의 조건

1. 입구가 넓을 것. 사각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가능한한 입구가 몸통과 같은수준으로 넓어야 한다.

2.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한 홈이나 굴곡이 있을경우, 세척이 가능할지를 고려해 봐야 한다.



허리케인죠는 그 기라성같은 일본의 만화에서도 전설급에 속하는 만화이며,

수많은 후대 만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특히 가장 마지막장면인 그 하얗게 불태웠어는

수많은 패러디와 오마주에 쓰이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작만화보다 TV에서 방영했던 애니메이션 [도전자 허리케인]으로 먼저 알려졌다.

당시 인기가수이던 김종서씨가 "고향도 묻지마라. 이름도 묻지~마라"  로 시작해서 "나는 바람타고 달린다. 영광찾아 달린다."로 끝나는 주제곡도 유명.

그러나 어쩐 일인지 김종서씨는 저 노래를 부정하고 있다고 한다. 무명때 부른건지 기억에 없다고....

(시기상으로도 대답없는 너로 유명해진 이후인데.... 뭐지.스스로 흑역사라 생각하는건가?)


명성을 먼저 알고 봤지만, 개인적으로 왜 이렇게 이 만화가 전설급으로 통하고 인기가 많은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인은 건달이자 개망나니 그 자체인 주인공. 조울증 환자 야부키 죠의 개차반같은 행동거지와 성격 등등.


물론 주인공이 다 착하고 예의바르고, 성실한 노력파에 모범생의 노선을 걸을 필요는 없다.

어쩌면 그게 다른만화와 이 만화의 차이점이고, 그렇기에 더욱 명작의 반열에 올라서 있는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만화의 주인공이란 포지션은 독자가 감정 이입을 하게 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죠라는 놈은 도저히 감정 이입이 될 수가 없는 놈이라는 것이다.

도저히 공감이 가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얄미운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예의 없는 성격.

주인공에게 도저히 공감할 수없는 결정적인 이유.

남의 체육관에 찾아가서 난장판을 일으키는 것은 기본이요.

공적인 자리에 지 멋대로 난입해서 개판 만들어놓기.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관장한테 친구처럼 개기는 걸로도 모자라, 자기랑 생각이 다르다고 주먹질까지 일삼는

선수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그 외에도 만화의 전권 내용 자체가 그냥 이 캐릭터의 저 모난 행동거지의 연속이니 개인적으로 보기가 힘들었다.




유리멘탈.

멘탈이 어찌나 종잇장같은지....

상대방이 말 한마디로 도발을 걸거나, 심지어 그냥 미소만 날려줘도 혼자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르며 날뛰는 것도 전매특허다.

도발은 물론이고, 도발 축에도 들지 못할 상대방의 행동에 혼자 길길이 날뛰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라이벌이던 리키이시가 죽은 이후에, 방황하는 장면도 좀처럼 공감이 잘 가지 않는다.

이해는 가지만 정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니..... 답답하기만 할 따름이다.

애초에 착하고 어진성격이라면 좀 이해가 갈까 모르겠다만, 애초에 이 캐릭터의 행동거지와 성격으로 미루어 보면

저걸갖고 폐인이 되서 그렇게 오랫동안 방황하는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호의를 무례함으로 돌려주

히로인인 요꼬나, 슈퍼마켓주인 부부, 니시, 노리꼬 등등의 진심으로 자기를 생각하고 위해주는 사람들에게

아주 시원하게 뒷통수를 치는 장면..

아니... 애초에 이 캐릭터는 남의 호의를 순수하게 호의로 받아들이는 거 자체를 보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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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도전자 허리케인 애니메이션 때문에 펀치드렁크로 인한 후유증으로 링 위에서 새하얗게 모든 걸 다 태우고 죽는다는 걸 알고있었다.

(사실 이게 죽은거다. 죽은 거 아니다라고 분분하지만.... 작가는 일단 죽은게 아니라고 못박았다고 한다.)

그냥 아... 빨리 세계챔피언하고 싸우다가 가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기가 힘들었다. 개인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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