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커쳐 이야기

내가 전업작가가 되지 않은 이유

감자만두 2017. 9. 2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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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도 초반.

그때는 그림을 꿈꾸는 사람에게 참 암울한 시기였다.

책 대여점이 포화상태로 만화가라는 직업이 공식적으로 사망선고된 시기였다.


지금이야 웹툰이라는게 어마어마한 발전을 하고, 한번 뜨면 예전 출판만화가들과는 비교가 안되는 떼돈을 벌지만

2000년도 초반에는 웹툰 자체가 없었다.

그 때는 그림쟁이가 안정적인 급여를 받을 일이라고는 오직 단 하나 게임회사 뿐이었고,

만화과 친구들도 모두 90퍼센트 이상이 게임회사만 지향했다.

그 때 나홀로 독불장군 식으로 난 캐리커처를 좋아하고, 꼭 이 길을 가겠다고 독불장군 아웃사이더처럼 선포했었다.

이것을 나는 내 인생 최대의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캐리커처의 매력은?

사람을 닮게 그리는 것. 그 자체다.

사람의 얼굴이란 참 기묘하게, 그냥 얼굴에 똑같은 개수의 눈 코 입 귀가 달린것만으로 무한대의 생김새가 나온다.

그림으로 사람의 얼굴을 딱 봐도 이 사람이다 알 수 있게 표현하는 것은 아주 신기한 마술이었다.

최소한의 손놀림으로 , 신기하게도 그 사람을 만들어낸다.

쓸데 없는 것은 다 흘려버리면서, 핵심만을 정확히 한방에 찔러내는 일격필살의 느낌이랄까.


더구나 특히 그것도 특징을 더욱 심하게 극대화시켜도 오히려 더욱 더 그사람같아지는 것은 마법 그 자체였다.



 


지금도 기억난다. 이것은 2004년에 이 블로그에 남겼던 글의 사진이다.

이 사진의 저 노란바탕 히바우두 그림이 당시의 나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내가 캐리커처에 빠져든 이유? 내가 추구하는 캐리커처의 매력.

닮게 그린다는 것.

저렇게 닮게 그린다고 해서 저것이 나에게 수익을 안겨주지 않는다.

위와같이 유명인의 얼굴 캐리커처. 저런걸 그려서 수익을 얻을 만한 일거리가 수요가 얼마나 될까?

신문이나 잡지사에 끝내주는 캐리커처를 게재하는 화백님들?

그런 일을 필요로 하는 곳이 얼마나 될까? 수요가 거의 없다.

결국 매우 특별한 몇 퍼센트 이내의 특별한 작가가 아니라면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일반 손님을 그려주고, 그려준 그 손님에게서 수익을 얻는 라이브캐리커처 밖엔 없는것이다.


지금까지 4번의 기회가 있었다.

완전히 캐리커처 전업작가로의 길을 걸어갈 기회가......

하지만 그때마다 결국 그 길을 거부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기술자로서 추구하는 목표와, 고객이 원하는 니즈가 절대 일치 할 수 없다는 높은 벽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닮게 그린다. VS  예쁘게 그린다.

잘라말해 이 두가지는 공존하기 힘들다.

즉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먹고 살려면 닮는걸 포기하는게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즉 애초에 원초적으로 내가 캐리커처에 빠져들고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이유 자체를 거부해야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조건 자기가 예쁘게 나와야만 한다.

주변 친한 지인이 캐리커처 그려달라고 밤낮으로 매달리더니,

막상 그려줬더니 화를 내던 어이 없는 경험.

작가라면 누구나 다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흔히들 말로는 자기는 자기가 어떻게 생긴지 알기에, 절대 기분상해하지 않을거라면서 그려달라고 매달리지만

그 후의 결과는 이렇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예쁜 사람일수록 그리기 쉽고, 못생긴 사람일수록 그리기 어렵다.

과연 그럴까? 처음엔 그렇다. 

처음엔 못생긴 사람이 예쁜 사람보다 그리기가 훨씬 쉽다.

못생긴 사람은 특징이 그냥 대충봐도 확 보이는데, 예쁜 사람은 밋밋하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이 쌓이고, 경험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만들어준다.

이젠 예쁘든 못생기든 어떻게든 그 사람의 느낌을 낼 자신이 생긴다.

그러면 이젠 못생긴 사람이 예쁜 사람보다 그리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예쁜 사람은 그냥 닮게만 그려도 예쁜 그림이 나오는데, 못생긴 사람은 닮으면서도 예쁘게 그려지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하게 닮고 못생기게 그리면?  손님이 분노하고 빡돌겠지?  나한테 분노를 표출하겠지?

이런 흉측한 그림 필요없다고 그냥 가거나, 그림값을 주더라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던져 주겠지?

이것이, 내가 그토록 캐리커처를 오랫동안 진심으로 사랑했음에도, 전업작가를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이것은 실제로 많이 접하게 되는 사례이다.

1.

"어머~ 너무 이쁘게 그려주셨네요."

"아닙니다. 전 그냥 있는 그대로 그렸을 뿐입니다.."  ----------이러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2.

"아....  제 (어느 부분)이 이렇게 심한가요?"  (해석: 닮긴 한 거 같은데.... 꼭 날 이따위로 표현해야만 했나요?)

"사진이 아니고, 그림이다 보니까 특징이 강조되기도 하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똑같이 나오면 그건 사진이지요."

(해석: 고객님이 그렇게 생긴걸 어쩝니까? 이거 미화시키면 당신이 당신 아닌게 되버리는걸요.

 그러면 나 아닌거 같애~ 이 소리 할꺼면서 말입니다.) ------------이러한 경우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꼭 그렇게 의도적으로 못 생기게 만들야 하느냐고....

의도적으로 망가뜨린다?

 아니 씨발.... 이건 무슨 개소리야?!!!!  대체 내가 무슨 이득보자고 의도적으로 못 생기게 만들겠냐?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하지만,  지금까지 난 단 한 번도 캐리커처를 그림에 있어 고의적으로 못 생기게 표현하려는 의도를 가진 적이 없다.

대부분의 다른 작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냥 보이는 대로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요소를 표현할 뿐인데,

이게 남들 눈에는 악의적인 목적으로 망가뜨리는 걸로 보이나보다.

장점을 부각시킬 수도 있을텐데,

일부러 단점을 부각시켜서 사람을 흉하게 만든다고?

이딴 개소리를 지껄이는 것들은 죄다 주둥이를 찢어버리고 싶다.

그려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얼굴 생김새에서 장점, 단점 이런 정의 자체가 애매모호할 뿐만 아니라, 생각해본 적도 없다.

장점이니 단점이니 그런게 아니고 얼굴의 중요 요소가 있을 뿐이다.

요소란?

단지 그 사람을 가장 그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단지 이것을 표현할 뿐이다.

 

그런데 이 작은 요소를 강조하기는 커녕,

그냥 표현하는 것조차도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꼭 자기의 단점을 이렇게 강조해서 망가뜨려야 하냐고, 캐리커쳐 작가를 악당으로 만든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

 


얼굴 외형이다. 이것은 캐리커처에서 매우매우..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요소이다.

누구나 다 A ,B 처럼 계란형의 얼굴이고 싶어한다.

그러나 광대뼈가 심하게 부각된 얼굴 , 네모턱, 살찐 이중턱 등등 . 솔직히 자기 얼굴이 저렇게 나오는걸 좋아하는 사람 많지 않다.

문제는 이 얼굴 외형이 Likeness의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것을 다르게 만지는 순간

전혀 닮지 않은 다른 인물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얼굴 외형만큼보다 중요성은 약간 덜할지라도, 눈, 코, 입, 기타 그 요소들의 간격과 비율 등등 다 고려한다면

솔직하게 닮게 그리는 것과 , 예쁘게 그리는 것 두 가지를 다 만족한다는게 얼마나 난감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입캐리다. (=말로만 가능한 캐리커쳐.)


 

 

이 두 개의 집합에서 교집합을 찾아야 하는데...... 이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교집한 부분이 아예 없을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경력이 쌓이면 오히려 못생긴 사람보다 예쁜 사람이 더 그리기 편하다는 것이다.

예쁜 사람들의 경우야 닮게만 그려도 이쁘게 나오기가 수월하기 때문에...


작년 12월 초에 코스카 캐리커처 컨벤션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난 국내의 수많은 작가들과, 일본의 작가들을 만나서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울 수 있었다.

내가 특히 일본의 작가들에게 놀랐던 점은 여러가지 그림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개인작품을 할때와, 라이브로 손님을 그릴때 제각각의 다른 스타일로 그린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만났던 일본 여자 작가가 자신의 그림에 캐리커처와는 다른 [니가오에]라는 표현을 썼다.

일본어는 전혀 몰라서 잘은 모르지만 "카툰 & 포트레이트" 라는 단어는 확실히 알아들었다.

결국 세계적인 그 일본 작가들도, [캐리커처]와 [니가오에]를 다른 것으로 이야기했다.

닮게 그리고 강조하는데 중점을 둔 [캐리커처]와 , 예쁘게 그리고 판매하는 것에 중점을 둔 [니가오에]는 구분을 하더라. 


우리나라도 제발 좀 일본의 니가오에처럼 뭔가 구별지을 수 있는 그런 단어가 따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현재 일반인들의 캐리커처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1. 그냥 사람의 얼굴그림이 캐리커처라 아닌가요?.
  2. 대가리만 크고, 몸뚱이는 조그마하면 캐리커처 아닌가요?.
  3. 특징과 포인트를 살려서 만화처럼 그리는게 캐리커처 아닌가요?.

이 정도다.

1,2 번은 그냥 한숨만 나오고.

3번이 그래도 가장 비슷하게 알고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저렇게 말하면서도 "예쁘게 그려져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이미 이전에 캐리커쳐와 캐릭터에 관한 글을 남겼고, 그리는 손님 본인에게 돈을 받고 판매하는 캐리커쳐의 대다수는 사실

캐리커처가 아니라 캐릭터라 하는게 더 바람직하다고 했었다.


여담으로 예쁜것 보다 닮은 것에 치중하며, 과장되고 익살맞고 재치있게 표현하는
캐리커쳐 다운 캐리커쳐를 그리는 업체/단체들도 물론 있다.
난 그들의 그림을 매우 좋아하며, 작가로써 존경심도 갖고 있다.


난 캐리커처를 여전히 좋아한다.

남들 다 게임회사 간다고 할때, 캐리커처 한다고 했던걸 일생일대의 [잘못된 선택]이라 말하고 있으면서도

그랬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지금까지 만나온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캐리커처는 지금까지도 그려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로 캐리커처에 모든 걸 다 바쳐 올인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글쎄요...."라는 대답밖에...

다시 20살로 돌아가서 진로를 정한대도 캐리커처를 택하겠느냐 묻는다면 "아니오! 절대....."라는 대답밖엔 할 수 없을 것 같다.


닮는 그림 보다는,  안 닮아도 예쁜 그림을 더 선호하는것이 보통 사람이다.  닮게 그리면 욕먹기 십상이다.

이것이 지금 일반사람들의 인식이며, 이게 현실이다. 

그리고 이건 철 없던 시절 내가 그토록 열광했던 그 캐리커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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