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커쳐 이야기

작가의 능력치를 미리 낮춰놓고 시작하기.

감자만두 2017. 9. 2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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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과거에 작성했던 글이나, 타 블로그로 이전을 시도하느라 지웠다가 다시 적는 글임)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며, 필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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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 중 버프와 디버프라는 게 있다.





버프라는건, 캐릭터의 특정 능력치들을 상승시켜주는 것.

공격력 상승, 이동능력상승, 공격속도 상승, 방어력 마법저항력 상승, 회복력 상승 등등





디버프라는 건, 버프의 반대말로 캐릭터의 능력치를 하락시키는 것.



강력한 디버프 기술인 탈진

 하지만 이런 버프와 디버프는 게임내에만 존재하는게 아니라, 현실 내에도 존재하며

라이브 캐리커쳐 현장에서도 버프와 디버프가 오가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캐리커쳐 작가에게 가장 큰 디버프는 무엇일까?



바로 그놈의

 "예쁘게 그려 주세요."

실제로 난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능력치 게이지가가 35% 이상씩 뚝뚝 떨어지는 걸 느끼며

"전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일어나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물론 손님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세상에 무료로 또는 돈 주고, 그리는데 있어서 못생긴 그림과, 예쁜 그림 중에 고르라면 누구나 다 100이면 100 예쁜 걸 원할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전문가니까 다 할 수 있어야돼. 무조건 닮으면서도, 예쁘게 못생기게를 다 조절할 수 있겠지.'라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는

분들에게 말하자면, 캐리커쳐 작가는 인간이지 마법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깐풍기가 달콤하고 매콤하고 맛있을 수록 좋은거지만, 그에 앞서 더 중요한 건 닭고기로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맛있게 잘 만들어도 돼지고기로 만들어놓고 깐풍기라고 내놓으면 그게 말이 안되는 것처럼 말이다.



예쁘고 중요한 것 보단, 그 사람의 특징이 드러나고, 그 사람같은 느낌이 나야 한다는게 게 가장 중요한 기본 이라는 것이다.

세상은 변했고,  닮게 못 그리면서도 캐리커처 작가로 돈 벌고 활동하는 시대라지만,

난 아직까지도 Likeness만이 가장 중요한것이라고 고지식하게 믿고 있다.





보이는가? 말 한마디가 디버프가 되어 능력치가 팍팍 깎이는 것이...



개개인에 따라서 디버프의 강도 역시 달라진다.

실제로 턱이 네모낳거나 얼굴 살이 많아서 턱이 이중이거나 한 여자분들은 늘 긴장을 잔뜩 해야 하는 1순위이다.

있는 그대로 그리면 실망한 표정 지으며 화내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맘대로 손보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래도 우직하게 보이는 그대로 그린다. 그리고 리젝을 당한다.



그렇다면 라이브 캐리커쳐에는 늘 디버프만 있을까? 아니다. 물론 버프도 있다.

그럼 손님이 작가에게 선사해 줄 수 있으며, 작가의 능력치를 더욱 상승시키는 버프는 뭐가 있을까?

그건 바로,



"있는 그대로 그려주세요."

"예쁘지 않아도 되니, 우리 애라는 느낌이 딱 나게 그려주세요."

"특징을 살려서 그려주세요."



이러한 말이다.

리젝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지만

이런 분들의 경우는 다 만족스럽게 마무리되었던 기억이다.



대체적으로 처음 하시는 분들이 아니라, 전에 다른데서도 해봤다가, 실망한 분들 중에 저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냥 전혀 딴판인 남을 그려놓은 것 같아서, 이번에 다시 한다는 분들.

이런 손님일 경우 만족하시는 모습을 보면 당연히 그 보람도 두 배가 된다.



아직도 기억나는 손님이 있다.

어머니가 여자아이를 데리고 의자에 앉았는데, 어린 아이라 당연히 본연의 귀여움은 있지만

대중적으로 말하는 예쁘고 깜찍하고 그런 느낌은 아닌 아이였다.

작업을 시작하려니 등뒤에서 아이 아빠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쁘게 그리지 마세요."



엥 이게 무슨 소리?

개성을 살려달라. 웃기게 해 달라. 특징을 강조해달라. 뭐 이런 이야기는들어봤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예쁘지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자기 딸내미를... 그리고 그 분은 다시 강조를 하셨다.

"예쁘게 그리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 그려주세요.  방금 전에 분들 하셨던 거 처럼요"



그러자 아이를 안고 있던 아이 어머니까지도

"안되요. 예쁘게 하시면..ㅋㅋ"



아마 저 부모님들은 처음 그리는 분들이 아니었던 거 같다.

물론 그 결과물에 기뻐하며 만족스럽게 마무리 됐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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