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죽는다는 소리를 너무도 쉽게 한다.
초등학생때부터 상대방과 시비가 붙으면 서로 으르렁대며 하는 소리가 "너. 죽여버린다."이며
아파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슬퍼 죽겠다. 괴로워 죽겠다. 외로워 죽겠다.
짜증나 죽겠다. 듣기 싫어 죽겠다.
등등 뭐만 하면 강조의 의미로 너무 쉽게 쓰고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진짜로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그런 위기를 느낀 순간이 있는가 ?
본능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지고 정신이 번쩍 들면서
이대로라면 내가 오늘, 아니면 지금 당장 생명이 끊길 수도 있을거라는
그런 원초적인 두려움 말이다.
그게 난 두 번 있다.
두 번째는 2010년도경이었을 것이다.
당시 활동하던 동호회에서 1박2일로 갔는데, 물가에서 바나나보트를 탔을때였다.
타면서도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나 짖궂은 형 한명이 일부러 중심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보트를 뒤집었다.
바나나보트는 한 사람의 힘으로도 충분히 보트를 뒤집을 수 있다.
모두가 물에 빠졌는데, 그 물에 빠진 후의 상황이 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순간 물속으로 3~4미터를 쑤욱 내려앉으며 떨어지는데도 발 끝엔 아무것도 닿지 않는 것이다.
맨날 무릎높이의 얕은 물이나, 바닷가나 수영장을 가도 허리높이를 벗어나지 않았는데,
발에 아무것도 닿지 않는 채 하염없이 내려가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렇게 끝도 없을것 같은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나 이제 죽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수영은 커녕 물에 뜨지도 못하는 나였지만
물론 구명조끼를 입었기에 살아나와서 지금 이렇게 자판이라도 두들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느꼈던 두려움은 진짜였다.
죽음이 진짜 코 앞에 있다고 느꼈었던....
첫 번째는 2003년 1월1일이었다.
당시 2002년 10월에 내 생애 첫 여자친구를 만나게 되고, 한창 콩깍지가 절정에 달했을시기였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청춘 남녀에게 특별한 날의 이벤트라면 다 끼고 싶은 법이다.
애초부터 난 사람이 바글대는 장소 자체를 싫어해서 반대했지만, 여자친구는 또 달랐나보다.
다른 커플들 하는 것이었으면 다 하고 싶었나보다.
결국 내가 져주는 수 밖에 없었고, 12월 31일 보신각 타종행사를 가게 되었는데........
11시부터 이미 종각 일대는 완전 마비상태였었다.
사방에서 끊임없이 폭죽과 불꽃이 터졌다.
12시에 종 치고 그렇게 잠깐이나마 들떠갖고 방방 뛰고, 오랜시간 그 인파에 섞여 기다렸는데
타종행사는 너무도 쉽게 금방 끝이 나 버렸다.
문제는 타종행사가 끝난 이후였다.
콩나물 시루처럼 숨쉴 틈 없이 빽빽하게 메워진 사람들 사이에 갇혀 움직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사방은 마치 인간으로 가득 찬 벽 같았다.
난 콩나물 시루의 콩나물 한 줄이기자, 팽이버섯 다발속의 한 줄기의 팽이버섯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동서남북 사방에서 사람들이 밀려오는 것이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모두들 비명을 지르며 버티며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넘어지는 순간 다신 일어나지 못한다. 넘어지면 무조건 밟혀 죽는다.
단지 이 생각 하나로,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기 위해(=죽지 않기위해) 버텨야 했다.
최소 2시간 이상은 그렇게 길거리에 갇혀서 넘어지지 않기 위한 사투를 벌였던 것 같다.
앞의 커피숍과 롯데리아같은 곳에는 일찍히 자리잡은 인간들이 알박기 하며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당시엔 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서 사투를 벌이를 자들과, 여유롭게 그들을 구경하는 자들이라니....
먼 훗날 고등학교 졸업하고 연락이 뚝 끊겼던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함께 어울리던 다른 친구이야기를 들었는데, 허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서 군대도 면제받고
주기적으로 계속 병원에 다닌다고 한다. 영원히 완치될 순 없다고.....
그리고 그 원인을 들어보니, 보신각 타종행사에서 넘어졌단다.
내가 만약에.... 라고 생각한 상황을 겪은 사람이 실제 내 주변에 있었다니....
그래도 목숨은 건졌구나. 내가 너무 과도하게 겁을 먹었던 것이었나 싶기도 했는데....
2022년...
이태원에서 158명이 사망한 압사 사고가 있었다.
나는 그날 종각에서 몇시간 동안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으려고 목숨 건 사투를 벌였는데,
그날 이태원에 모인 젊은이들은, 내리막길에서 도미노 현상으로 무너져 내려오기 때문에
버티는 것 조차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심지어 전문가 분석으로는 길에 선 채로 압사당했을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그 날, 내가 그 군중에서 느꼈던 위기는 결코 기우가 아니었다.
그리고 거기서 넘어지고 완치될 수 없는 허리부상을 얻은 그 친구도 운이 나쁜 게 아니라,
오히려 운이 좋은 걸 수도 있겠다.
그땐 그 종로 길바닥에서의 몇 시간은
정말 끔찍했던 시간들이었지만, 시간이 오래지나고보니 으레 그렇듯 그것도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앞으로도 계속 인파가 몰리는 장소는 극혐하며 피해 다녀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운명을 달리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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